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로이아 전투 (문단 편집) == 진행 == 당시 제위에 있던 [[요안니스 2세]]는 1120년부터 [[룸 술탄국]]에 대한 영토수복전쟁을 진행중이었다. 주력군 대부분이 제국군 총사령관 [[요안니스 악수흐]]와 함께 아나톨리아를 선무하고 있는 가운데, 황제 본인은 누나 [[안나 콤니니]]가 일으킨 반정 이후 뒤숭숭한 민심을 정리하기 위해 소수의 병력과 함께 [[콘스탄티노플]]에 남아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가 지척인 트라키아로 페체네그 대군이 육박한 것이다.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방위하고 주력군이 복귀할 시간을 벌기 위해 황제는 480명의 [[바랑인 친위대]]를 포함한 3,000여명의 근위대와 5,000여명의 트라키아 지방군을 소집해 페체네그족의 공세로를 따라 이동했다. 두 군대가 마주하게 된 곳은 트라키아의 베로이아 시였다. 그러나 전력차는 확연했다. 페체네그는 다섯배에 이르는 3~4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내려온 상태였고, 여차하면 콘스탄티노플을 공성할 기세였다. 아나톨리아에 있는 주력군이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고, 공성이 시작되면 제국 여론의 핵심인 수도 시민들이 동요할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 삼중 성벽에 의지하지 않고 그가 가진 병력으로 도박을 벌이기로 결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